BOOK COVER
청소년 소설

아몬드

저자: 손원평

사유의 깊이 ★★★★☆

공감과 소통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주저앉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은, 남의 고통에 무감각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저마다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타인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뎌져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SNS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무감각은 더욱 짙어집니다. 화면 너머로 수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지만, 진정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SNS가 가진 씁쓸한 이면입니다. 저자는 어쩌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아픔을 통해, 표면적인 소통에만 치중한 채 서로의 진심을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쏟아지는 수많은 뉴스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비극을 너무나 쉽게 소비하고 스쳐 지나가곤 해요. 스마트폰 화면 터치 한 번으로 세상 반대편의 아픔을 목격하지만, 정작 우리가 보내는 것은 진심 어린 눈물이 아닌 차가운 이모티콘 하나일 때가 많지요. 손원평 작가님이 윤재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어쩌면 아주 날카롭고도 가슴 아픈 고백일지도 몰라요. 감정을 느끼는 뇌의 한 부분이 작아서 아몬드라 불리는 소년은 도리어 감정이 과잉된 우리보다 타인을 더 투명하게 바라보니까요. "공감한다"고 말하면서도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의 얕은 감정적 교류는, 어쩌면 윤재가 가진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보다 더 깊은 마음의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집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아픔이 내 마음에 와닿아 작은 파동을 일으킬 때 비로소 시작되는 법이니까요.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매일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온기를 확인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사랑과 구원

"사랑이란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내게는 아몬드가 있다. 그것은 내 몸속에 단단히 박힌 두 개의 단단한 씨앗이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움직인 것은, 그 작은 씨앗을 끊임없이 보듬어 준 사람들의 온기였다."

"누구든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누군가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작품 속에서 윤재는 곤이와 도라라는 두 친구를 만나며 감정이라는 낯선 세계에 조금씩 눈을 뜨고, 공감을 이해하려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위기에 처한 곤이를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찾아가는 장면은 큰 울림을 줍니다.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친구를 지키고 가정을 찾아주려 했던 윤재의 모습은, 감정이 없던 소년이 마침내 '행동하는 사랑'을 깨달았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부모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기라는 꿈을 향해 육상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감행하는 도라의 열정은 윤재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됩니다.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해 나가는 소년들의 모습은, 진정한 구원이란 결국 서로를 보듬고 이끌어주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소설 속에서 윤재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내고 온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대단한 기적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매일 윤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엄마의 손길, 할머니의 따스한 품,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상처를 가진 곤이와의 거친 부딪힘이었지요.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거창한 판타지를 꿈꾸곤 해요. 하지만 이 책이 속삭이는 구원의 본질은 참 소박하고도 위대하답니다. 완벽하게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영웅은 세상에 없지만, 상처받은 이의 손을 잡으려 기꺼이 내미는 그 작은 '노력' 자체가 이미 구원의 시작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 주니까요. 위기에 처한 곤이를 향해 윤재가 발걸음을 옮겼던 그 순간, 윤재의 머릿속 아몬드는 자라나지 않았을지 몰라도 가슴속 온도는 이미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을 거예요. 조건 없이 곁을 지켜주는 도라의 맑은 달리기처럼, 사랑은 계산되거나 세련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행동 그 자체라는 것을 소년들은 온 삶으로 증명해 내고 있어요.

성장과 변화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틀렸다. 멀리서 봐도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더 큰 비극인 것들이 세상에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것들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내 가슴속의 아몬드는 여전히 작지만, 이제 나는 그것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내게 준 상처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윤재는 홀로 책방을 이끌어가려 애쓰지만, 결국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이라는 씁쓸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 외롭고 힘겨운 시간 곁에는 언제나 윤재를 지켜보고 붙잡아 준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윤재를 돕던 어른들 역시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으나 깊은 갈등으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윤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소설은 윤 교수 역시 윤재와 함께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성장은 한다"라는 말처럼, 이 작품은 상처 입은 이들이 서로 연대하며 조금씩 자라나는 위대한 성장기입니다.

세상에는 멀리서 보아도 아프고, 가까이서 보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비극들이 참 많아요. 윤재가 소중한 가족을 잃고 홀로 낡은 책방의 문을 닫아야 했을 때의 쓸쓸함은 감정이 없는 소년의 등 뒤로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지요. 하지만 소설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불완전한 어른들과 상처받은 아이들이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며 연대하기 때문이에요. 자식을 잃은 슬픔에 갇혀있던 윤 교수도,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던 곤이도, 감정을 배우지 못했던 윤재도 결국 서로라는 거울을 통과하며 한 뼘씩 자라나게 되지요. 성장이란 완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어요. 비록 우리 마음속의 아몬드가 여전히 작고 단단해서 세상의 풍파에 쉽게 흔들릴지라도, 그 안에 숨겨진 사랑의 씨앗은 언제든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의 작은 아몬드에게도 따스한 봄바람 같은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어지는 오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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